순교지 나가사키....

日本の生活

순교지 나가사키....

영락 0 6,357 2006.12.07 13:50
순교지 -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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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년 포르투갈 선박의 내항 이후 네델란드,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등 일찍부터 서양문명의 영향을 농후하게 받아온 나가사끼는 교회를 비롯하여 서양식 건물이나 외국인 묘지들이 남아 있으며 동서문화가 융합된 이국적인 정서가 깃든 국제도시로 도시 전체가 일종의 박물관이다. 포석이 깔린 오란다자카나 장려한 성당, 흰 페인트 빛깔이 인상적인 목조의 서양식 건물등 시가지에는 이국적인 색체가 물씬 풍긴다.

성당의 종소리와 뱃고동 소리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가 살아있는 곳이지만 기독교 전래에 따른 순교와 원폭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다. 나가사키역 앞에서 시작되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판공원이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기독교 금지령에 의하여 처형당한 26명의 가톨릭 선교사와 일본인 신자가 기도하는 모습을 새긴 조각상이 있다. 니시자카 형장에서는 약 600명의 교인이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 26성인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외국인이 많이 살던 오란다자카에 있는 목조의 서양식 건물이나 고딕탑,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오우라 성당, 영국인 무역상이 살던 그라바소노, 그리고 원폭투하지점에 세워진 원폭투하 중심비가 있는 평화공원 등은 나가사키의 명물이다.이밖에 사정에 있는 도데라나 스와진자, 항구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이나사야마 등이 볼만하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시가지를 시가전차와 버스가 종횡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근처까지 가서 걸어 다니는 것이 좋다.

■ 일본 26 성인상

1593년 프란치스꼬회 선교사들이 일본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벌인 것이 도요또미히데요시의 비위를 상하게 하였다. 또한 1596년 도사에 표착한 스페인 선박 산펠리페호 사건까지 겹쳐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부채질 함으로써 1597년 2월 5일 프란치스꼬 수사 6명을 비롯한 3명의 예수회 수사와 미끼등 일본인 17명이 나가사끼, 니시사까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1862년 성인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시성 100주년을 맞이한 1962년 6월 10일 기념비가 완성되었다. 화강압 대좌에 26성인의 청동상이 하늘을 우러러 복음을 말하고 있다. 1981년 2월 2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이 순교지를 방문하여 이 기념비가 전세계를 향하여 사랑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끊이지 않고, 신앙을 전파할 수 있도록 기원한다고 말씀하셨다. 26성인중에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잡혀가 그곳에서 영세 입교하고 성프란치스꼬 삼회에 입회하여 역행을 쌓다가 순교한 성바오로 이바라끼, 그의 동생 성내오이바라끼 그의 아들 12세의 소년 루도비꼬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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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성인 기념 성당

나가사끼 순교지를 내려다보는 곳에 성당이 서 있다. 순교당시 나가사끼의 많은 신자들은 26성인과 함께 이곳에서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1962년 6월에 완성된 이 성당에는 상징적인 두 개의 탑이 있다. 불길과 같이 높이 솟아있는데, 하나는 성모마리아를 받들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성령을 의미한다. 휴닉스 모자익은 교또, 오사까 등에서 잡혀온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수집해온 도자기파편으로 제작된 것이다.

■ 26성인 순교 기념관

26성인 기념상 뒷편에는 초기 일본 선교사들의 유품과 순교 성인들의 유품 및 순교 당시의 형틀 등이 진열되어 있고 유해소가 안치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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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우라 성당

일본 최고의 가톨릭 교회 국보로 1864년 프랑스인 선교사 프티잔신부에 의해 건립되었다. 하얀 벽면에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래스가 잘 조화된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1864년 2월에 축성식을 봉헌하였는데, 3월에 세 여인이 프티잔신부를 찾아와서 여기 저희들도 신부님과 같은 신앙입니다 하며 은밀히 신자임을 고백하였다. 그 뒤 우라까미등에 잠복해 있던 신자 약 1만명이 교회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이 성당을 건립한 프티잔 신부는 1866년 일본주교로 임명되었다. 오우라 성당 우측에는 일본 최초의 신학교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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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가미 성당

1584년부터 우라까미는 신앙의 뿌리를 내린 곳이며 쇄국중에도 신앙을 엄밀히 지켜왔던 곳이다. 때로는 신자들이 촌장집으로 끌려가 예수의 그림을 밟게 하는 등 수모를 당한 곳이다. 특히 1868년부터 1873년까지는 마을 전체가 유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감옥이 해방되고 생존자들이 우라까미로 돌아온 후 선교사들이 촌장집을 매수하여 1914년 동양 최대의 성당을 라케신부의 설계로 건립하였다. 붉은 벽돌의 석조 로마네스크형 교회였다.그러나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으로 말미암아 신부, 신자, 성당이 불에 타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성당은 타다 남은 부분의 원형대로 이동 재건하여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계기로 완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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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폭탄낙하 중심지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나가사끼 우라까미 상공 500미터에서 폭발하여 한순간에 폭발중심지로부터 4km의 땅이 완전 파괴되었다. 현재 이곳은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원폭중심지의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그곁에는 폭발할 때 파괴된 우라까미성당 외벽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공원 주위에는 평화를 기념하는 전세계 각국에서 온 돌로 치장된 "원폭의 소녀"상과 "평화를 기원하는 어린이상"등이 있다. 평화기념상 원폭으로 지옥의 그림을 방불케 하는 참상이 있고부터 10년을 맞이한 1955년 8월 9일 나가사끼 시민들은 영원한 평화를 기념하고 전쟁 희생과 명복을 빌기 위해 초토로 변한 언덕을 다듬어 중심에다 평화기념상을 세웠다. 탑은 이곳 출신의 기타무라가 제작한 것으로 윗쪽부터 가르키는 오른손은 폭탄의 위협을 표현하였고 수평으로 된 왼손은 평화를 의미하며 가볍게 감은 눈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있다고 있다. 이 기념상 앞뜰에는 전국에서 기탁된 모금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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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바오로 미키와 그 동료 순교자들

nagasaki_7.jpg1596년 12월 9일 일본의 절대 통치자인 타이코사마 는 26명의 그리스도교인을 체포하고 오사카에서 사형시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행동을 인정했다. 그들은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 외곽에 있는 니시자 언덕에서 순교했다. 그 26명 중에는 바오로 미키, 베드로 밥티스타와 다섯 명의 프란치스코 제1회 회원들, 17명의 제3회원들, 그리고 2명의 교리교사가 있다.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이들 중 다수는 노예 생활 중에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여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그들의 쓰라린 생활을 극복해 나갔다. 그 당시 일본에는 프란치스꼬 회원들이 전교를 하고 있었는데, 많은 조선인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프란치스꼬 재속 3회에 입회했던 것이다. 1597년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박해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26명이 나가사끼에서 순교의 화관을 쓰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프란치스칸으로 성 베드로 밥티스타를 비롯하여 17명의 프란치스꼬 재속 3회원이 있었으며, 이들 중에 3명이 조선인이었다. 이들은 1627년에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862년 6월 8일에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 26명 중에 요코야마에서 태어난 예수회 평수사인 64살된 제임스 기사이는 공동체의 손님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제가 되기위해 1년의 공부가 더 남은 튜노쿠니에 태어난 30살된 바울 미키, 20살된 요한 데 고또는 예수회 수련자로서 감옥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처형되는 날 아침 첫 서원을 하였다. 바울 미키는 첫 일본에서 순교한 첫 번째 예수회원이 되었고 첫 번째 일본인 순교자가 되었다.

○ 성 바오로 미키(P. Miki, 1564-1597)
기리시이땅 시대의 대표적인 일본인 순교성인. 바오로 미키는 1564년에서 1565년 사이에 일본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1568년 부친인 판다유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1580년 예수회 교육기관인 세마나리오에 입학하여, 1589년 22세 때 예수회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신앙이 독실하고 재능이 뛰어난 그는 사제 수업 동안에도 예수회의 오르간티노 신부를 수행하여 게이한 지방에서 포교에 힘썼다.

1597년 1월 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그리스도교 금압령에 의해 체포된 성인은 1598년 2월 5일 나가사끼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같이 순교한 일본 26성인중 일본인 20명 가운데서 중심인물이다.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최후의 설교를 한 후, 신앙을 위해 의연하게 순교하였다.1862년 다른 25명과 함께 시성되었는데 나가사끼 교구에서는 성인의 축일을 특별히 기념하고 있다.

일본 출신의 예수회 회원인 바오로 미키 수사는 일본의 순교자들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바오로 미키는 십자가에 매달려서 처형장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판결문은 '이 사람들이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왔다'고 합니다.그러나 나는 그 어떤 다른 나라 출신이 아닙니다. 나는 진정 일본 사람입니다. 내가 살해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내가 이 이유 때문에 죽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죽기 전에 진리만을 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나는 여러분이 내 말을 믿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여러분이 내 말을 믿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이 행복해지도록 그리스도께 도움을 청한다고 여러분 모두에게 한번 더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복종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나는 나의 박해자들을 용서합니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시도록 청하며, 나의 피가 풍성한 결실을 가져오는 비처럼 나의 동포에게 내리기를 바랍니다."

1860년대에 선교사들이 일본에 되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고 난 뒤에 그들은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나가사키 근처에서 살아가며 간신히 그들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알았다.1627년에 이미 시복된 일본 순교자들은 1862년에 마침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날 일본 교회에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비록 가톨릭 신자들의 수는 많지 않지만 교회는 존경받고 있으며 완전한자유를 누리고 있다. 극동 지방에서 그리스도교의 전교는 느리고힘든 일이다. 26명의 순교자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신앙과 열성은 1597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바치심으로써 당신 사랑을 드러내셨으므로, 주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이런 최대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특히 박해자들에게 증거하도록 어떤 신자들은 이미 초기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앞으로도 항상 부르심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죽임을 당하신 스승을 본받고 스승을 닮아 피를 흘리는 제자의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요, 사랑의 최고 증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은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것이기는 하나, 모든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가 언제나 당하고 있는 박해중에서도 십자가의 길로 그르스도를 따라갈 준비는 갖추고 있어야 하겠다' (교회헌장 42항)

○ 성 베드로 밥티스타(peter baptist 1545~97 )
nagasaki_8.jpg스페인의 아빌라 교외에서 태어난 그는 1567년에 프란치스칸이 되어 멕시코 선교사로 떠났다가, 1583년에는 필리핀으로 갔다. 또 그는 일본에서도 활동하다가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크리스챤 박해 때에 25명의 다른 크리스챤들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성 바오로 스즈끼(paul suzuki, 순교자 1563~97)
일본 오와리 출신인 성 바오로는 1584년에 예수회원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프란치스칸 3회원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교리교사로 사제들을 도왔다. 바오로는 25명의 다른 신자들과 함께 나가사끼 교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성 필립보 (Philip, 선교사, 순교자, 1597)
스페인 부모를 두고 멕시코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필립 라스 카사스이다. 그는 처음에 푸에블라에서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였으나, 1589년에 수도회를 떠나 장사꾼이 되어 필리핀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또 다시 생각을 바꾸어, 1593년에 재차 마닐라의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였다.

1596년, 그가 사제서품을 받기 위하여 멕시코로 돌아가던 중에 그의 배가 항로를 잃고 일본에 기항하였다. 그는 1596년에 체포되었으며, 다음 해에 나가사끼에서 25명의 신자들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1597년의 일본 순교자로서 1862년에 시성되었다.

○ 성 레오 가라수마루(L. Karasumaru, 순교자, 1597)
한국 태생인 그는 원래 이방 종교의 사제가 되었으나, 1589년에 일본에서 예수회원들에 의하여 천주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첫번째 재속 프란치스꼬 회원이 되었고, 또 전교 회장이 되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일본 내의 천주교 박해 동안, 그와 25명의 다른 교우들은 1597년 2월 5일에 나가사끼 교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와 함께 그의 동생 바오로 이바라끼 및 그들의 20세 되는 조카 루도비꼬 이바라끼가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1862년의 일 본 순교자로 간주되어 시성되었다.

일본의 나가사키는 두 번째의 원자 폭탄이 떨어져서 수십만 명이사망한 도시로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약 4세기 전에는 26명의 일본 순교자들이 오늘날 거룩한 산으로 불리고 있는, 나가사키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그들 가운데에는 신부들과 수사들,평신도,프란치스코회 회원,예수회 회원,프란치스코회의 제3회원 등이 있었다. 또한 교리 교사와 학자, 단순한 기능공과 하인들도 있었고, 노인과 무죄한 어린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예수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공통된 믿음과 사랑 속에 일치되어 있었다.

동시대의 저자가 쓴 [성 바울로 미끼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에서
(Cap. 14, 109-110: Acta Sanctorum Febr. 1, 769)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리라,
그들이 못박혀 있던 십자가들이 땅 위에 세워졌을 때 놀라웁게도 모든 이들은 파시오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가 준 격려의 말에 응하여 견고한 자세를 취했다. 원장 신부는 거의 부동 자세로 시선을 하늘에다 못박아 놓고 있었다. 마르띠노 수사는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주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시편을 외웠다.

프란치스꼬 블랑코 수사도 낭랑한 목소리로 하느님께 감사 드렸고 한편 곤살보 수사는 목소리를 좀더 높혀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낭송했다.

우리 형제인 바오로 미끼는 자신이 이제까지 서 보았던 강단 중에서 가장 영예로운 강론대 위에 서 있다고 느끼고서 우선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기는 일본인이자 예수회원이라고 밝히고, 자기는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죽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자신이 받은 그 위대한 특전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강론을 마쳤다.

"이제 이 순간을 맞아 내가 진리를 배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여러분 중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 길이 나의 원수들과 내게 폭력을 가한 모든 이들을 용서하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국왕을 용서하고 나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라고 간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려 이 마지막 고뇌의 순간에 동료들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모든 동료들의 얼굴에 커다란 기쁨의 표정이 나타났고 특히 루도비꼬에게서 그러했다. 군중 가운데서 한 교우가 루도비꼬에게 "당신은 조금 있으면 천국에 있게 될 것"이라고 외치자, 그는 기쁨에 넘친 동작으로 손과 온 몸을 위로 뻗쳐 모든 군중들의 주의를 끌었다.

루도비꼬 곁에 있던 안또니오는 하늘에다 시선을 못박고는 예수와 마리아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을 부르고 나서 나가사키의 주일 학교에서 배운 "찬양하라, 주님을 섬기는 아이들아."라는 시편을 노래했다. 그 곳의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 가운데는 이와 같은 몇 가지 시편의 학습이 있었다.

다른 이들도 평온한 얼굴로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구경꾼에게 참된 그리스도교 생활을 영위하라고 격려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행위들로써 그들은 기꺼이 죽는다는 충분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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