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の生活

일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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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종교
 
 일본의 주된 종교로는 신도, 불교, 그리스도교가 있다.
통계에 의하면, 특정 종료를 열심히 믿고 있다고 말하는 일본인은 적고, 종교에는 무관심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먼저 일본인의 현세적인 성격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계의 혜택 속에서 일본인은 외적의 침입 없이 수 세대에 걸쳐 지내왔다. 그 때문에 종교를 열심히 찾는 기풍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원래 다신교적이었던 일본 고래의 신도의 영향으로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전통적으로 관대했다.
 대분분의 일본인들은 탄생이나 결혼의식은 신도식으로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른다.
한 사람이 신사에 참배도 하고, 추석 때는 절에 가서 참배하며, 크리스마스도 경축한다.

한사람이 두 종류 이상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본종교의 특징이다.
각 종교가 발표한 신자 수는 신도 1억 1,700만 명, 불교 9,000만 명, 그리스도교 152만 명이다.
종교 인구를 합산해 보면 일본인구의 약 2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외국에서는 예가 없는 일이다.
일본인의 종교의식은 구미의 기독교와 같은 국교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신도, 불교, 기독교 등이 기이하게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의 국민성을 논할 때 그 특성으로 지적되는 것의 하나가 바로 무 종교성이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의 수나 구미나 중동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의 약 3분의 1만이 종교를 갖고 있다고 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불교 교단에서는 불교 신도 수가 9천2백만 명이라 하고 있고, 신도에서는 신자수가 약 8천5백만 명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결국 이 두 종교의 신자 수를 합치면 일본 전체인구를 훨씬 웃돈다고 하는 웃지 못할 결과가 나오게 된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종교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그 습성을 드러내 한 사람이 여러 종교를 아무 거리낌없이 수용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와 같은 민족은 아마도 세계에서 일본인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인간은 유한하며, 이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부처님이라고 해도 좋다. 일본 사람들은 또한 하늘과 태양, 그리고 삼라만상, 모든 존재에 대해 경외하고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것이 신심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인의 대표적인 종교는 불교, 신도, 기독교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민간 종교가 있으나 어느 종교도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는 않아서 신도와 불교 양쪽을 믿는 일본인도 많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런 종교의식으로 새해 첫날에는 신사에 가서 한 해의 소원을 빌고, 결혼식은 기독교식으로 교회에서 하고, 장례는 불교식으로 하는 등 어느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새해에는 신사에 참배하고, 오봉에는 조상의 산소에 참배하는 등 종교적 행사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 신도
 
 신도는 일본고유의 자연종교이며 신도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진자이다. 신도에서 말하는 신은 무수히 많으며 처음에는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을 신으로 삼았다. 그리고 점차로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따라서 신도에는 특정한 교조는 없고 교전도 없다. 후에 신도는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이론화되었다. 19세기 이후에는 국교와 같이 취급되고 천황이 신격화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가와의 관계를 끊고 각지에 있는 신사의 신앙이 되었다.
 일본인은 태어날 때 그 고장 수호신에게 참배를 하고, 결혼식을 신전에서 행한다. 또한 신사에 입학 합격을 기원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교통안전을 빈다. 집안에 가미다나에 제사하는 경우도 많다. 정월에는 유명한 신사에 가족모두가 참배를 하고, 각 신사마다 1년에 한번 씩 열리는 축제에는 그 지역주민이 많이 모인다.
이처럼 신사와의 인연은 깊으나 대부분의 국민은 신도의 교리에는 무관심하며, 현대 일본인에 대한 사상적인 영향은 적다.
 신도는 일본 고유의 종교로 일본인의 자연관과 조상숭배 정신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상의 모든 삼라만상은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신들을 모시는 곳과 모든 자연에는 시들이 머문다고 한다.
산이나 나무는 신체가 되는 경우가 많고, 도리이나 금줄로 그곳이 신역이라는 것을 표시한다.
보통은 신사를 세워 거기에 신이 머무는 신체를 안치한다. 신도는 일본인들이 감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의 일본인들은 신도에 신앙심을 갖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도는 한편으로 일본의 천황제를 종교적으로 지탱하는 것이며,
지금도 천황가의 종교로서 오랜 관례를 남기고 있다.

 신도는 일본 고유의 자연종교이며 신도의 신을 제사 지내는 곳이 신사이다. 신도에서 말하는 신은 무수히 존재하며 처음에는 자연물이나 자연현상도 신이라 여기는 샤머니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점차로 조상을 숭배하는 일본인의 마음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신도 측에서는 고대로부터의 원시적 신앙을 불교에 대항 할 수 있는 이론과 조직을 겸비하여 명실상부한 하나의 종교로 편성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게 되는데, 그것이 국가신도의 성립으로 연결되게 된 것이다.

불교와 신도는 , 다소 혼합되는 점이 있긴 했으나 일체화되는 일없이 서로 구별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형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제도로써 사원이 매장행사를 책임지고 관리하게 됨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일본인이 불교와 관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상의 신앙으로써 신도는 계속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원시적 종교의 기반 위에 고도로 조직화된 종교가 더불어 존재한다고 하는 현상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전파의 경우에 있어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메이지유신과 함께 신도는 천황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종교가 되고, 신사는 정부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된다. 결국 국가와 종교의 합체는 국수주의적인 기풍을 몰고 왔으며,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국가 신도가 널리 보급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국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신사신도와 종파신도만이 남게 된다. 결국 신도는 일본인의 감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오늘날의 일본인은 신도에 대해 신앙심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으로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2) 불교
 
 불교는 백제 26대 성명왕 538년에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
7세기 초반 당시의 황태자이며 실제로 정치를 행했던 쇼토쿠태자가 불교를 깊이 학문하고 이것을 보급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12세기경까지는 불교는 귀족을 위한 종교였다.
그러나 13세기부터 서민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행하고 동시에 무사들에게는 「선」이 보급되었다.
일본인의 대부분은 형식적으로 불교도이다. 그러나 대개의 가정에는 불단과 나란히 카미다나도 모시고 있다.
신사의 절의 행사에 같이 참가하는 것이 일본인의 습관이다.

선종은 12~13세기에 중국에서 귀국한 일본인 승려에 의해 전해졌다. 선종에서는, 진리는 우리의 언어와 문자에 의한 표현을 초월한다고 간주하고 좌선수도에 의해 직접 체득함으로써만 파악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종은 무사도나 다도, 꽃꽂이 등의 중심사상이 되어 현재의 일본사상이나 문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인의 생활은 불교와의 연관성이 매우 강하고 신자가 아니더라도 절에 참배하며 장례식을 불교식으로 행하고 죽은 후에는 불교상의 이름을 붙인다. 또, 대부분의 가정이 집에 불단을 만들어 공물을 놓고 선향을 피우며 선조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일본의 종교는 백제 26대 성명왕 538년에 전래해준 불교와 민속종교로 발전해온 신도가 있다.
지금 일본에서는 때아닌 신도붐이 일고 있다. 신도란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원시시대의 샤머니즘,
토템신앙의 일종으로 신도를 믿는 일본인은 1억 명이다. 일본인들은 정초가 되면 진자에 참배하러 온 사람으로 줄을 잇는다. 메이지시대에는 신도가 국교였다. 일본인은 다신교이므로 종교인수는 2억 1천 7백만명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묵은해의 때를 지워버리고, 새해에는 보다 많은 복을 다라고 기원하는 것처럼, 이 날 밤 참배자 수는 전국적으로 1천만 명을 넘는다하니, 일본인의 신도에 대한 관심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리스도교
 
 일본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것은 1549년 카톨릭교회의 예수교선도사인 프란시스코 자비엘이 가고시마에 도래한 때이다. 처음에 지배층 중에는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예수교의 카톨릭 포교에 호의적인 사람도 있었다. 17세기 초의 최고 전성기 때는 신도가 약 7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후, 봉건체제의 유지에 유해하다고 생각되어 점차 억압하고 금지하게 되었다. 신자는 박해를 받고 1613년에 외국인 선교사는 외국으로 추방되었다. 카톨릭 금지령 이후에도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중에 개항과 함께 1859년 이후, 프로테스탄트 선교사가 미국에서 파견되고 카톨릭, 러시아정교도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외국인 선교사는 일본에서 사회사업이나 교육 사업에도 종사하고 유럽, 미국 문화도입에도 공헌했다. 일본의 근대문화라는 것은 대부분 구미문화를 의미했는데 구미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그리스도교적 사상과 생활방식의 일부 도덕 등도 일본에 들어왔다. 현재의 일부일처제 등도 그 한 예이다. 현재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는 프로테스탄트 53만 명, 카톨릭 45만 명, 그 외 54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본에는 이들 각 파가 만든 대학도 있다. 또, 종파를 초월한 국제 기독교 대학도 설립되어있다.
 기독교는 1549년에 전래되었으며 카톨릭 교회의 예수교 선교사인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포교를 시작했다.
16세기말에는 당시 최고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봉건제도의 확립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심하게 탄압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외래종교로서 배척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헌법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총포와 카스테라를 비롯하여 일본에 영향을 미친 많은 초기 서양 문화는 기독교와 함께 들어왔다. 일본의 기독교 신자의 비율은 전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만 명 미만으로, 불교계에 비하면 아주 적지만,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쌓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교육면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기독교에 입각한 교육을 하고 있는 사립학교도 많고, 문학에서는 엔도 슈사쿠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크리스찬 소설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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